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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데스 바네아 사건아는 게 힘 2025. 1. 17. 17:59
가데스 바네아 사건 (민수기13-14장)
1. 개요
출애굽 1세대의 불신과 반역과 하나님의 심판은 이후 세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모든 일에 때가 있음을 분명히 가르쳐 주었다.
가데스 바네아는 모세의 인도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정탐꾼들을 보내 정탐을 시킨 장소다. 애굽을 떠난 지 근 2년 만에 드디어 가나안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이 위치는 가나안에서 불과 80km떨어진 곳이다. 백성들의 마음은 긴장되고 어수선했다. 과연 우리가 저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이미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거대한 아낙 자손이 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쫓아내라고 하셨는데 그들과 함께 살 수는 없을까?” 수많은 생각들로 그들의 마음을 들쑤시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의혹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2. 민수기 13-14장 구성
• 가나안 정탐꾼들의 파견(13:1-20)
• 정탐꾼들의 귀환과 보고(13:21-33)
• 이스라엘 전 회중에 의한 가데스 반역 행위 발발(14:1-10)
•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와 모세의 중보 기도(14:11-19)
• 가데스 반역 사건에 참여한 출애굽 구세대의 사멸을 위한 사십 년 광야 방랑 선언(14:20-35)
• 불신앙적 보고를 했던 10명의 정탐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14:36-38)
•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모한 가나안 정복 시도와 패배(14:39-45)
3. 용어 정리
• 가데스 바네아(Kadesh Barnea)
‘거룩한 샘’이란 뜻. 시내 반도 동북쪽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의 성읍이다.
브엘세바에서 남서쪽으로 약 80㎞ 지점에 위치한다. 바란 광야와 신 광야 사이에 있는 사막 지대에서 물이 나는 곳이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성읍이 발달하였다.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도 한때 이 근방에 정착하였고, 여주인 사라를 피해 도망친 하갈이 광야에서 여호와의 천사를 만나 위로받은 곳 역시 이 근방이었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아말렉 족속이 차지하기도 했으며, 가나안 북방 지역의 왕 그돌라오멜이 정복하기도 했다. 가데스 바네아는 처음에 ‘심판의 샘’이란 뜻의 ‘엔미스밧’으로 불렸으며, 이외에도 ‘게데스’(수 15:23), ‘닷딤홋시’(삼하 24:6), ‘므리바 가데스’(겔 48:28), ‘므리봇 가데스’(겔 47:19) 등 시대에 따라 다양한 지명으로 불렸다.
• 담대 하라
이는 '지속적인 용기를 가져라','(승리를 확신하고) 용맹스럽게 행하라'는 뜻으로써, 곧 그들이 탐지하는 모든 사물을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바라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정탐꾼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는 것만 보는 현상적인 시각이 아니라, 그것을 모두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믿는 믿음을 통해 보는 신앙적 시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그 땅을본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둘 뿐이었고, 나머지 열 명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그 땅을 보았다.
• 여호수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뜻으로서, '구원'을 뜻하는 '호세아' 앞에 언약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칭호 '여호와'의 첫 자 '예'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다. 모세가 '호세아'를 언약의 하나님과 연관된 이름인 '여호수아'로 개명한 것은 향후 가나안 정복 전쟁의 지휘자로서 호세아(여호수아)가 앞으로 수행해 나가야 할 책무가 어떠함을 보여 준다.
• 갈렙
성경 다른 곳에서는 그나스(그니스) 사람 갈렙이라고 나타난다(32 : 12 ; 수 14 : 6). 그런데 그나스 족속은 일찍부터 팔레스틴 주변에 거주하고 있었던 에돔 족속 중 하나로, 아마 이들 중 일부가 이스라엘의 유다지파에 합류되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갈렙도 순수 히브리 혈통은 아니었다. 그러나 갈렙을 통해 보듯이 유다 지파 내에서 이들의 역할은 컸다.
• 에스골 골짜기
'에스골'은 '포도송이'라는 뜻을 지닌 곳으로, 헤브론에서 가까우며 과일 농사에 적합한 곳이다. 그리고 '골짜기'란 겨울 우기(10-4월)에만 생기는 골짜기의 개울, 곧 '와디'(Wady)를 가리킨다. 이 '와디'는 종종 건기에는 지표면에 물이 말라버리지만 땅속에는 과수가 자라기에 충분한 수분을 품고 있다. 결국 '에스골 골짜기'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확인하고 감탄했던 만큼(24절) 포도 농사가 잘되던 곳이었다. 지금도 이곳은 가나안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포도를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4. 본문 연구
1) 12 정탐군의 파견과 보고(민 13장)
• 12 정탐꾼의 선정(민 13:1-16)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세롯에서 출발하여 바란 광야에 있는 가데스에 도착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에 도착하였을 때에, 모세는 그들에게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을 차지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정탐꾼들을 보내서 그 땅을 탐지한 후에 행동을 하자고 제의했다. 모세는 이 말을 좋게 생각하였다(신 1:23).
가나안 정탐은 백성들의 요청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백성들로 하여금 바로 올라가 취하도록 하였으나 백성들이 그 땅을 먼저 정탐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모세가 이 요청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리하도록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백성들은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거듭된 약속을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그들의 신앙에 이상이 생겼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한 이스라엘을 책망치 않으시고 정탐꾼을 파견케 하여 그들에게 당신이 약속한 그 땅을 친히 목격하게 하심으로써 모든 의심을 떨쳐 버리도록 인도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시는 모든 조처는 궁극적으로 성도의 신앙 성숙과 유익을 위한 것이다
모세는 이 일이 백성들의 불신앙과 두려움으로 인해 이루어진 일이었다고 하였다(신 1:21).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기만 하였다면 가데스에서 일어난 엄청난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지식으로 판단하여 진행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타락한 판단력은 너무나도 불신앙적인 판단으로 치우치기 때문이다.
12지파 각 한 명씩 가장 영리하고 날쌘 사람을 뽑아 정탐꾼으로 삼아 가나안 땅으로 보냈다(3). 그들은 각각 자기들이 차지해야 할 땅을 정탐하고 그 사실을 놓고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를 모색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백성의 지도자들로서 이 일에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었으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4-16).
1. 르우벤 지파: 삼무아('알림')
2. 시므온 지파: 사밧('재판관')
3. 유다 지파: 갈렙('공격자')
4. 잇사갈 지파: 이갈('그가 속할 것이다')
5. 에브라임: 호세아(호세아(구원)+여호와=여호수아)
6. 베냐민: 발디('구속')
7. 스불론: 갓디엘('구속')
8. 므낫세: 갓디('복됨')
9. 단: 암미엘('하나님의 백성')
10. 아셀: 스둘('감춰진 비밀')
11. 납달리: 나비('숨기다')
12. 갓: 그우엘(여호와는 도움)
• 12 정탐꾼들의 조사(민 13:17-24)
모세는 12 정탐꾼들을 가나안에 보내면서 남방 길을 통해서 산지로 올라가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조사해 오도록 지시하였다.
1. 가나안 땅이 어떠한가?(17)
2.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강함과 약함, 그리고 숫자의 다소(18)
3. 그들이 거하는 땅이 좋은가? 나쁜가?(19)
4. 그들이 거하는 곳이 산성인가? 진영인가?(19)
5. 토지가 기름진가? 박한가?(20) 수목이 있는가? 없는가?(20)
모세는 그들이 돌아올 때에 그 땅의 과실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모세의 명령을 받은 12 정탐꾼은 명령대로 올라가서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까지 정탐하였고, 또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까지 정탐하였다. 헤브론은 애굽의 소안보다 7년 전에 세운 곳이었는데, 그 곳에는 아낙 자손인 아히만과 세새와 달만이 있었다. 이 세 자손은 후에 갈렙이 헤브론을 차지하게 될 때에 갈렙에 의해 쫓겨나게 된다(수 15:14, 삿 1:20). 그들은 헤브론의 영주였던 아르바의 자손들이었는데, 이 아르바의 이름을 따라서 헤브론이 기럇 아르바, 또는 아르바의 성읍으로 불리어졌다. 아르바는 아낙자손 중에도 가장 큰 사람으로(수 14;15), 아낙가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15:13). 아낙 자손은 거인의 체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 2:10-11)에서는 아낙자손을 에밈과 르바임 등의 족속과 한 부류로 취급하고 있다.
12정탐꾼들은 모세의 지시를 따라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매었고, 석류와 무화과를 취했다. 24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에서 포도송이를 베어서 그 곳을 에스골(포도송이) 골짜기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 정탐꾼들의 보고(25-33)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은 바란 광야의 가데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그 땅 실과를 보이며, 자신들이 조사한 것을 전했다(25-26).
그런데 2개월 만에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에 백성들은 간담이 녹아내렸고, 눈에서는 절망의 눈물이 흘렀다.
그들은 가나안 땅이 매우 비옥한 곳이라는 데에 동의를 했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은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였다.
그러나 그 땅을 차지하는 것에는 자신들이 역부족이라는 점이 넘지 못할 산으로 보였다. 이럴 때 우리는 눈의 현실을 보느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불가능한 우리의 능력과 현실의 벽은 실제다. 그러나 그것을 명하시고 보내신 하나님은 더욱 실제적이고, 그 모든 것을 초월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진격해 갈 수 없는 일이다.
그 땅을 정복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 열 명의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차지하는 일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들은 그 땅이 좋기는 하지만, 그 땅에 사는 거민들은 강하고 성읍도 견고하며 매우 크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그 땅에는 거인 족속인 아낙 자손이 살고 있었고, 남쪽에는 에서의 후손인 아말렉 족속이 살고 있었고, 산지에는 가나안의 후손인 헷, 여부스, 아모리 족속들이 살고 있었고, 해변과 요단가에서는 가나안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현실은 바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가나안을 정복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일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던 것이다.
2) 백성들의 결정과 하나님의 심판(14장)
• 백성들의 결정과 여호수아의 반대(1-10)
가. 백성들의 결정(1-4)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온 회중들은 크게 낙심하였다. 그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울었고(1), 마침내 모세와 아론은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 통곡했다. 결국 모세는 이렇게 믿음이 없고 절망에 빠진 자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었다. 가나안으로 진격하자고 해도 갈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그 명령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 바네아 근처 광야를 38년 동안 배회하게 된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죽고,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 믿음으로 무장해서 들어가게 하겠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그들에게는 남은 일은 현실에 타협하든지, 아니면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들은 차라리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서 칼에 죽게 만들었다고 원망하였다. 그들은 마침내 모세 대신 다른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일단 마음을 하나님을 거부하는 쪽으로 결심한 이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지도자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뽑기로 결정을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보다 자신의 지혜를 따르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지도자들이 얼마나 판단과 말에 있어서 신중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지도자의 입에서는 불 신앙적인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신앙인에게는 후퇴는 없다. 성도들은 한 번 부름을 받았으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지도자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나.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의 반대(5-10)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인도자인 모세가 취한 태도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애굽과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듯이, 앞으로도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은 이미 그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완악해 있었다(신 1:29-31).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 앞에서 엎드린 채로 하나님의 중재를 기다렸다. 환란과 반역의 때에 영적 지도자들이 해야 할 태도는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폭도가 된 백성들에게 대항치 않고 그들 앞에서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표시로 엎드려 간구하였다. 간구의 자세는 배를 땅에 대고 누운 자세를 취하였다.
바로 그 때에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의 대표로 정탐을 했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옷을 찢으며 백성들을 향해 소리쳤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여호수아와 갈렙은 통분하여 옷을 찢고 소리 높여 외쳤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14:7~9)”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했다. 의롭다고 인정받은 아벨을 죽인 가인처럼, 이스라엘 온 회중은 그들이 체험한 능력의 하나님을 불신하고, 이제 망했다, 다 죽었다, 애굽에 있는 것이 나았다는 비겁하고 패배적인 생각을 붙들고는 옳은 말을 해대는 두 사람을 죽이는 편을 택했다. 이것이 가데스 바네아 반역 사건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열 정탐꾼들의 보고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이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하며, 이스라엘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려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며, 적을 정복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했다(14:7-9). 그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믿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광야에서 멸망할 때에 죽지 않고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불신앙으로 원망하던 무리들은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죽음을 당했다. 이스라엘 회중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지만, 그들은 이를 거절했었다. 마침내 회중들은 그들을 돌로 치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으나, 그들은 끝내 돌아오기를 거절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회막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10).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은 언제나 좋은 곳이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들어가야 할 낙원과 같은 곳이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갈 천국은 그럴 것이다.
5. 교 훈
간과하고 넘어 가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가 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곳은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서 손에 넣어야 하는 사명을 갖는 것이지 나는 가만히 있고 하나님이 그것을 내 손에 넣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정한 신앙에서 이탈하거나 부실해지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게으름의 문제다.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 하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해칠 수 있는 인간의 불신앙이지.” 이렇게 궤변을 늘어놓는다. “약 먹을 때 기도하면 믿음이 없는 짓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님은 믿으면 무엇이든지 우리 손에 넣어주시는 것을 즐겨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 뜻을 행할 때 약속하신 것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보면 가장 건전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고 했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으니까 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고, 그냥 힘들이지 않고 차지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이 더 잘 아시고 그에 따라 역사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가데서 바네아는 이런 점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음으로 이루기 시작하는 곳이다. 그들의 머뭇거림이나 좌절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믿음을 키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가데스 바네아에 서게 된다. 거기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문제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베푸셔서 복을 내리기 원하신다.
현실을 바라보고 낙심하여 앉아 있을 것이냐, 현실 위에 계시는 그분의 얼굴을 구할 것이냐? 믿음의 결단을 내리는 것, 이것이 곧 '가데스 바네아'의 비밀이다.
거대하고 버거운 현실 앞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지레 겁먹고 포기하고 패배적인 자리에 눌러 앉은 세월이 한스럽기 그지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상황을 보며, 현실의 장벽에 부딪칠 때마다, 그럼 그렇지 하고 나의 생각이 끝까지 옳다고 고집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지난 날을 되돌아볼 때, 그것이 이스라엘과 같은 불신이요 반역이요 타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현실을 뛰어 넘어,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제부터라도 믿음의 삶,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거대한 아낙 자손 같은 문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현실만 바라보고, 메뚜기 자화상이나 그리고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는 현실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는 힘도 공급해 주신다.
하나님과 함께 홍해도 건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처럼 풀무 불과 같은 시련도 만나고, 다니엘처럼 금방이라도 굶주린 사자의 이빨에 찢겨 죽을 것만 같은 절박함도 통과해야 한다. 그 후에 주께서 약속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6. 실천 사항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통해 믿음과 순종으로 인생길을 걸어가기 위한 3가지 실천사항을 정리했다.
믿음 = 매 순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순종 = 실천하는 것
첫째,
영적인 안목 키우기
말씀과 기도와 묵상으로 환경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둘째,
임마누엘 신앙 키우기
14:9하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시 3:5-6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이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 붙들기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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